포항 앞바다에서 수십 년째 피어오르다 사그라지기를 반복하는 ‘산유국의 꿈’. 과연 이 꿈은 거머쥘 수 있는 희망일까, 아니면 그저 신기루에 불과한 환상일까. 대한민국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현실을 타파하려 동해 바다 밑바닥의 불확실성에 베팅하는 동안, 지구 반대편 중동의 산유국들은 이미 한발 앞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물리적 지도를 바꾸며 지정학적 생존 게임의 판을 새로 짜고 있다.

꺼져버린 ‘불의 정원’, 그리고 시끄러운 대왕고래

2017년 봄, 포항 철길숲 조성 현장에서 지하수를 찾다 터져 나온 천연가스 불꽃은 꽤나 극적이었다. 며칠이면 꺼질 줄 알았던 그 불길이 무려 7년 반을 타오르면서, 포항시는 아예 이 일대에 유리벽을 두르고 ‘불의 정원’이라는 번듯한 관광 자원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140억 배럴 규모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을 때만 해도, 이 불꽃은 대한민국이 산유국으로 가는 낭만적인 전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로부터 불과 석 달 뒤, 불의 정원은 거짓말처럼 숨을 거뒀다. 초기 매장량 분석대로 천연가스가 자연 고갈된 것이다. 포항시가 부랴부랴 수증기와 조명을 쏘아 대며 미디어파사드로 불꽃이 살아있는 것처럼 ‘연출’을 고민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는 어쩌면 작금의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처한 씁쓸한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시작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동해 심해 가스전 시추 사업은 지금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20%라는 성공 확률과 탐사 컨설팅 업체의 신뢰도 문제, 탈탄소 시대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현실적인 암초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야당 주도로 국회에서 첫 시추 예산 497억 원이 전액 삭감되는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정부와 석유공사는 회사채라도 찍어내 자금을 융통하겠다며 불도저처럼 사업을 강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포항 어민들의 피맺힌 절규는 철저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홍게잡이 성수기인 12월부터 2월 사이만이라도 시추 작업을 피해달라는 간곡한 호소는 끝내 묵살됐고, 결국 분노한 어민들이 어선 47척을 끌고 나가 동해 8광구와 6-1광구 북부에 진입한 시추선 웨스트카펠라호를 에워싸고 해상 시위를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 되면 도비라도 붓는다”… 절박한 5천억 펀드 도박

탄핵 정국과 맞물려 중앙 정치권의 예산줄이 막히자, 이번엔 경상북도가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중앙정치 혼란으로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지 않도록 지방정부가 나서겠다며, 향후 5년간 총 5,000억 원 규모의 ‘에너지투자펀드’ 조성 계획을 덜컥 발표했다.

도 금고인 농협은행을 통해 채권이나 대출로 매년 1천억 원씩 자금을 조달해 모펀드를 만들고,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 참여시키는 수익 공유 모델을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심지어 지역 일각에서는 사업의 성공을 위해 ‘제2의 금 모으기 운동’이라도 불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온다.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릴 마중물이 간절하다는 심정이야 짐작이 가지만, 환경단체들은 이를 두고 “지방정부가 도민의 혈세로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국책사업을 맹목적으로 엄호하려 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수소나 소형모듈원전(SMR) 같은 고비용 에너지 분야까지 펀드 대상에 올렸지만, 막대한 리스크를 떠안고 도박판에 판돈을 올리는 듯한 이 행보의 끝이 어디일지는 미지수다.

모래사막의 진짜 고래, 호르무즈 해협을 지우다

우리가 바닷속 ‘가상의 고래’에 막대한 혈세와 정치적 생명을 걸고 왈가왈부하는 사이, 시선을 중동으로 돌려보면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냉혹한 현실은 더욱 극명해진다. 막대한 원유를 쥐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의 행보는 차원이 다른 에너지를 뿜어낸다.

최근 UAE 정부는 푸자이라 항구를 통해 석유 수출 능력을 두 배로 끌어올리는 신규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를 2027년까지 조기 가동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부다비 왕세자 셰이크 칼리드 빈 모하메드 빈 자예드의 특별 지시로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가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이 ‘동서 송유관(West-East Pipeline)’ 확장 사업의 핵심은 단 하나, 세계 최대의 석유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의 우회’다.

이미 하루 180만 배럴의 원유를 실어 나르는 기존 합샨-푸자이라 송유관(ADCOP)을 가동 중인 UAE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걸프 해안에서 호르무즈를 거치지 않고 오만 만(Gulf of Oman)의 긴 해안선을 통해 원유를 바깥으로 빼낼 수 있는 유일한 걸프 지역 산유국이다. 이들이 본래의 사업 일정까지 무시해가며 천문학적인 인프라 확충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난 2월 28일 시작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및 해군 군사 작전에 반발한 이란이 오만과 이란 사이의 좁은 해협을 사실상 틀어막아 버렸고, 그 여파로 아시아 등으로 향하는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20%가 일순간에 질식해 버리는 아찔한 상황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국제 에너지 시장이 굴러가는 진짜 얼굴이다. 한쪽에서는 수증기와 조명으로 연명하는 불의 정원처럼 희박한 확률에 지자체 예산까지 쏟아부으며 ‘희망고문’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바닷길이 위협받자, 아예 육상에 새로운 혈관을 뚫어 글로벌 경제의 동맥경화를 원천 차단해 버리는 압도적인 실력을 행사한다. 동해 앞바다의 위태로운 시추선과 중동 사막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송유관. 이 두 풍경의 교차는 자원을 가진 자가 지키는 방식과, 가지지 못한 자가 좇는 방식 사이의 아득한 간극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