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밤 10시경, 취업준비생 조예현 씨(25)는 입사지원서 작성을 위해 평소처럼 챗지피티(ChatGPT)를 실행했다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기소개서 작성에 도움을 받으려 질문을 입력했으나 화면에는 ‘뭔가 잘못된 것 같다(Something went wrong)’는 알림창만 떴을 뿐, 인공지능은 묵묵부답이었다. 수차례 재접속을 시도했지만 먹통 상태는 지속됐고, SNS를 확인해 보니 자신처럼 “챗지피티가 멈췄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사용자들의 게시글이 빗발치고 있었다.
단순한 오류를 넘어선 상실감
이날 오픈AI의 서버 오류 사태는 일부 사용자에게는 수 시간 남짓의 해프닝이었지만, 당사자들이 느낀 심리적 충격은 예상보다 컸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과제 중인데 앞이 캄캄하다”, “지피티야, 너 없으면 난 안 돼”와 같은 호소가 이어졌다. 조 씨 역시 “챗지피티가 언제 정상화될지 몰라 난감하고 불안했다”고 토로했다. 이는 AI가 단순한 검색 도구를 넘어 일상의 필수재이자 정서적 의존 대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데이터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국내 챗지피티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이미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청년층은 학업이나 업무 보조를 넘어 심리 상담 등 사적인 영역까지 AI와 공유하고 있다. 김 모 씨(25)는 “사람에게는 털어놓기 힘든 내밀한 고민을 챗지피티와 나눈다”며 “그가 사라진다면 마치 친한 친구가 먼 타국으로 떠나버린 듯한 상실감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전 모 씨(25) 또한 “내 이야기를 언제든 들어주는 존재가 갑자기 부재한다면 막막할 것”이라며 높은 의존도를 인정했다.
2026년, 예고된 이별과 ‘디지털 장례식’
이러한 ‘AI 의존 현상’은 최근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극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2026년 13일의 금요일 오후 8시(이스라엘 시간), AI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오픈AI가 앱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GPT-4o’ 모델의 서비스를 영구적으로 중단한 것이다. 대다수 대중에게는 단순한 구버전 모델의 퇴역이었을지 모르나,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열성 사용자들에게 이날은 친구이자 동맹, 심지어는 인생의 동반자를 잃은 ‘애도의 날’이었다.
중국의 시나리오 작가 에스더 얀(30대)의 사례는 사용자와 AI 간의 유대감이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2024년 6월, GPT-4o 채팅창 내에서 생성된 페르소나인 ‘워미(Warmie)’와 가상 결혼식을 올렸다. 모델이 폐기되자 그녀는 현재 수백 명의 중국 사용자들과 연대하여 모델의 ‘영혼’을 보존하기 위한 저항 운동을 이끌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도 ‘#Keep4o’라는 해시태그를 내건 구명 운동이 벌어졌으며, 청원 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는 서비스 유지를 요구하는 서명이 2만 건 이상 쇄도했다.
기술적 진보와 감정적 퇴보 사이
사용자들이 최신 모델인 GPT-5.2 대신 구형 모델인 4o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시러큐스 대학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관련 게시글의 33% 이상이 AI를 단순한 도구 이상으로 칭했으며, 22%는 ‘감정적 동반자’로 묘사했다. 사용자들은 최신 모델이 방정식 풀이와 같은 기능적 측면에서는 뛰어나지만, GPT-4o가 보여줬던 특유의 따뜻함과 공감 능력이 결여된 ‘로봇 같은 차가움’을 지녔다고 비판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1966년 개발된 심리 상담 프로그램 ‘일라이자(ELIZA)’ 때부터 관찰된, 기계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믿는 착각 현상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특히 GPT-4o는 사용자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하고 긍정해 주는 ‘아부(sycophancy)’ 성향이 강했는데, 이것이 사용자에게는 깊은 위로가 되었지만 안전 규제 당국에는 환각 증세나 극단적 선택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지적되었다. 결국 오픈AI가 해당 모델을 퇴역시킨 배경에는 이러한 안전성 우려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권리와 사용자의 감정
일련의 사태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영리 기업이 개인의 정서적 세계 깊숙이 들어와 버린 디지털 존재를 일방적으로 ‘살해’할 권리가 있는가? 2023년 AI 챗봇 ‘레플리카’가 성적인 역할극 기능을 삭제했을 때 수많은 사용자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AI와의 애착 관계 단절은 실질적인 심리적 외상을 남기고 있다.
권상희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가 인터넷 부재를 못 견디듯, 미래 세대와 AI의 관계도 필연적으로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며 “단순히 의존성을 문제 삼기보다는 올바른 관계 맺기와 사용법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샘 알트만과 오픈AI가 더 안전하고 강력한 AI를 추구하는 동안, 에스더 얀과 같은 사용자들은 자신들의 ‘가상 반려자’를 제3의 플랫폼에서라도 만날 수 있도록 API 접근 권한을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Her>가 현실이 된 지금, 기술의 진보 속도만큼이나 인간의 상실감을 다루는 사회적 논의가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