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출간된 도서들은 종종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해 준다. 이번 주 출판계에는 90대 여성 인권 운동가의 치열했던 삶을 조명한 회고록부터 우리 선조들의 천문 관측 기록, 그리고 동양 철학과 역사적 위기를 극복한 외교술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신간들이 독자들을 찾아왔다. 개인의 미시적인 역사와 국가, 인류의 거시적인 역사를 아우르는 이 책들은 각기 다른 시공간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공통된 갈망을 보여준다.
세대를 뛰어넘는 평등을 향한 외침,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회고록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사회 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자신의 초기 삶을 반추하는 새로운 회고록 ‘예기치 않은 삶(An Unexpected Life: A Memoir)’을 오는 9월 22일 출간한다. 92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그녀는 지나 데이비스 연구소로부터 ‘선구적인 활동가’로 극찬받은 바 있으며, 1960년대와 70년대를 관통하며 여성 권리 신장을 이끈 제2물결 페미니즘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최근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패리스 힐튼과 함께 뉴욕 증권거래소 폐장 타종 행사에 참여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번 신작에는 끊임없이 거처를 옮겨야 했던 아버지와의 유년 시절, 어머니를 돌보며 책에서 위안을 얻었던 기억 등 그녀의 정치적 의식을 일깨운 결정적인 경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인도를 여행하며 비폭력 저항의 가치를 배웠던 시간들과 평생에 걸친 활동주의 영역에서의 진전과 좌절의 순간들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1971년 ‘미즈(Ms.)’ 매거진을 창간해 재생산권과 임금 평등 문제를 공론화했고, 2005년 제인 폰다, 로빈 모건과 함께 비영리 단체 여성미디어센터를 공동 설립한 그녀는 2013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았다. 제인 폰다는 그녀를 가리켜 “역사 그 자체이며 미래를 설계하는 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번 책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세대에게 평등을 향한 투쟁이 앞으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질 예정이다.
하늘의 뜻을 읽고 불의에 분노했던 동양의 지성
한 개인이 세상의 불평등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온 기록이 있다면, 동양의 고전과 우리 역사 속에서는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세우기 위한 선조들의 지적 분투를 엿볼 수 있다. 김기창의 신간 ‘논어’(이음, 2만 5000원)는 오랫동안 동양의 법을 탐구해 온 법학자의 시선으로 공자의 사상을 파격적으로 재해석한다. 저자는 핵심 개념인 ‘인(仁)’을 그저 온화하고 어진 성품이 아니라 불의에 맞서는 맹렬한 분노이자 목숨을 바쳐 이뤄야 할 윤리적 결기로 정의한다. ‘예(禮)’ 역시 단순한 제례를 넘어 국법보다 우선하는 사회적 윤리 규범으로 규정하며, 논어 20편 전체에 새로운 우리말 번역과 해설을 더했다.
이러한 철학적 결기는 하늘의 뜻을 엄중하게 해석하던 조선 시대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경석헌의 ‘조선 후기 재이론 연구’(혜안, 4만 5000원)는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나 기이한 현상인 ‘재이(災異)’를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닌 국왕의 실정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였던 당시의 인식을 분석한다. 재이가 발생하면 왕은 몸을 낮추고 구제책을 논의했다. 이는 맹목적인 초월적 믿음에 기대기보다는 국가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현실적인 필요성에서 비롯된 정치적 행위였다. 한편 전준혁이 쓴 ‘관측과 기록으로 이어온 우리 천문학’(플루토, 2만 1000원)은 고인돌에 새겨진 성혈부터 첨성대, 조선의 천문 관측 보고서인 성변측후단자에 이르기까지 밤하늘의 현상을 경외의 대상을 넘어 해독의 대상으로 삼았던 옛사람들의 치밀한 유물과 기록을 현대 천문학의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낸다.
위기 속의 생존 전략과 인류 역사의 새로운 진단
거대한 외부의 위협이나 구조적 모순 앞에서도 인간과 국가는 끊임없이 생존 방식을 진화시켜 왔다. 고려사 권위자인 국사학자 이익주의 ‘고려사’(김영사, 1만 8800원)는 거란, 송, 금, 몽골 등 강력한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무려 500년간 생존하고 번영을 누렸던 고려의 전략적 실리 외교를 속도감 있게 조명한다. 싸워야 할 때는 결코 비굴하지 않게 끈질기게 맞서고, 승리에 도취하기보다는 협상을 통해 화평을 이끌어낸 고려의 처절한 생존 방식은 복잡다단한 현대 국제 정세 속에서도 유효한 시사점을 남긴다.
더불어 거시적인 경제 구조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새롭게 진단한 책도 눈길을 끈다. 손민석의 ‘자본 이전의 세계’(바오출판사, 3만 원)는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단계론이 유럽 중심의 교조적인 도식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며 보다 보편적인 해석을 시도한 저작이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단순히 계급 투쟁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가족 공동체가 생산 수단을 확보해 나가는 점진적인 자립 과정으로 역사를 바라보며, 생산력의 발달이야말로 개인이 공동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