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자본 조달로 옮겨붙은 AI 혁명 글로벌 AI 산업의 경쟁 패러다임이 기술 우위를 넘어 거대한 자본 전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2022년 말 챗GPT가 쏘아 올린 AI 혁명은 천문학적인 데이터센터 투자 비용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는 추세다. 막대한 부채 조달이 자칫 글로벌 금융시장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도 시장 곳곳에서 감지된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증권 자료를 보면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클라우드와 AI 서비스를 주도하는 5대 ‘AI 하이퍼스케일러’는 지난해에만 무려 1210억 달러(약 175조 원) 규모의 회사채를 찍어냈다. 이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의 연평균 발행액인 280억 달러를 네 배 이상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만약 이 폭발적인 흐름이 유지된다면 향후 3년간 이들 기업이 연간 1400억 달러, 많게는 3000억 달러 이상의 채권을 발행할 것이란 분석마저 나온다.

빅테크가 유상증자 대신 빚을 택하는 이유 곳간에 현금을 쌓아둔 빅테크들이 굳이 빚을 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주식을 새로 발행하는 유상증자는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를 늘려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를 희석시키고 거센 반발을 부르기 쉽다. 반면 회사채는 부채 상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 비용을 이익에서 공제받아 법인세를 절감하는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AAA~AA)을 확보하고 있어 아주 싼 이자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오라클 역시 지난해 9월 단일 건으로는 이례적인 18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채권 시장의 구축 효과와 버블 붕괴 우려 문제는 이렇게 쏟아지는 거대한 매물들이 금융시장 전반의 수급 밸런스를 거칠게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장기물 회사채가 대거 공급되면 국채나 우량 채권 금리가 덩달아 뛸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일반 기업들의 자금 조달 창구까지 좁아지게 만드는 ‘구축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짙다.

여기에 막대한 투자 비용 대비 확실한 수익 모델을 증명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구심이 더해지면서 ‘AI 버블론’도 고개를 든다. 막대한 전력 소모나 환각 현상 같은 고질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기대 이하의 실적을 낸다면 시장 전체가 요동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수익성 검증에 대한 우려로 주가가 10% 급락하며 순식간에 시가총액 3800억 달러가 증발하기도 했다. 영국의 한 거시경제 전문가는 현재의 열풍이 자칫 2008년 금융위기나 과거 닷컴 버블 당시와 유사한 결말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기 속에서도 질주하는 오라클의 인프라 확장 하지만 거시적인 우려 속에서도 개별 기업들의 펀더멘털 강화와 공격적인 투자는 여전히 거침이 없다. 앞서 대규모 회사채 발행의 주역 중 하나였던 오라클의 최근 궤적이 이를 방증한다. 오라클은 최근 자사의 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을 위해 블룸에너지(Bloom Energy)와 최대 2.8기가와트(GW) 규모의 연료전지 도입 계약을 체결하며 인프라 확충에 쐐기를 박았다. 이에 더해 AI 기반의 새로운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연이어 선보이며 시장 지배력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적극적인 행보는 롤러코스터를 타던 주가에도 즉각적인 생기를 불어넣었다. 올해 초 부진한 흐름 탓에 90일 기준 주가 수익률은 여전히 15.8% 하락한 상태지만, 최근 들어 단 하루 만에 4.7% 반등하고 일주일 새 13.8% 급등하는 등 강한 회복 탄력성을 보여줬다. 조금 더 시계열을 늘려보면 1년 수익률은 약 22.9%, 5년 수익률은 120%를 넘어서며 단기 변동성에 흔들리지 않은 장기 투자자들에게 확실한 보상을 안겨준 셈이다.

기회와 과소평가 사이의 줄다리기 현재 주당 약 163달러 선에서 거래 중인 오라클의 밸류에이션을 두고 시장의 평가는 꽤나 흥미롭다. 밸류에이션 점수 4점을 기록 중인 오라클은 현재 내재 가치 추정치 대비 약 38%,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목표가 대비 무려 50%가량 낮게 거래되고 있다. 과연 이 수치가 진흙 속에 숨겨진 진정한 투자 기회인지, 아니면 시장이 이미 미래의 불확실성을 선반영한 결과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클라우드와 AI 인프라 확장 로드맵을 발판 삼아 쌓아 올린 수주 잔고를 장기적인 이익 창출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향후 주가 향방을 가를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금융시장 불안이라는 거시적 리스크와 AI 인프라 선점이라는 미시적 기회 사이에서 투자자들의 셈법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고 있다.